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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웜 바디스' 고퀄자막 만들기 (Warm Bodies, 2013)

좀비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는 『웜 바디스』입니다. 좀비 영화는 다 뻔하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가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20세기의 락 음악들과 유머러스한 장면 등을 접하고 마음에 들어서 자비판 스틸북을 구입 후 우리말 자막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꽃미남 좀비 'R'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이기 때문에 ① 'R'의 내레이션 / ② 인간들의 대사 / ③ 'R'을 포함한 좀비들의 대사를 구분하기 위해 서로 다른 폰트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극중에서 '좀비'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자막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소장 중인 자비판 '웜 바디스' 스틸북에는 한글 자막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공식 자막이라고 되어 있는 SRT 파일을 Subscene 사이트에서 다운 받아 비교해 보았습니다. 위쪽이 공식 자막, 아래쪽이 제가 만든 자막입니다.

기존 번역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만, 아쉬운 점을 들자면 좀비의 대사가 실제 대사량에 비해 길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자막에서는 실제 대사의 음절 및 호흡과 맞도록 천천히 끊어서 말하는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묘사적인 단어나 언어유희가 일부 생략됐다는 점도 아쉽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대사가 나오기 전에 자막으로 미리 접하면 재미가 반감되는 부분의 경우 두 번째 문장을 분리해 줍니다. 주인공 'R'은 섬세한 성격으로, 말은 어눌하나 생각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a펜글씨B'체를 기울여서 샤프한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Oh, right.
It's because I'm dead.

 

[#2] '죽었다'고 말하긴 했지만 움직이는 사람들에 비해, 구석에 있는 남자는 진짜 죽은 사람이므로 '맛이 갔다'는 표현보다는 죽었다는 언급을 해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This girl is dead. That guy's dead.
That guy in the corner is definitely dead.

 

[#3] 그냥 보기에 안 좋은 것 뿐이지, 특별히 몰상식한 행동을 하거나 우기거나 한 게 아니므로 '진상'이라고 하면 듣는 좀비들이 억울할 것 같습니다^^;

Jesus, these guys look awful.

 

[#4] 흘려쓰는 손글씨 느낌을 살리기 위해 타이틀에는 a행서체를 사용했습니다.

 

[#5] 'shuffle'에 '섞다' 외에도 '발을 끌며 걷는다'는 뜻이 있었네요. 그냥 '돌아다닌다' 보다는 'shuffle'의 느낌이 살아있는 게 좀 더 재밌어 보입니다.

I shuffle around, occasionally bumping into people,

 

[#6] 그냥 쳐다보는 것이 아닌, 뻘쭘함을 표현해 주는 게 좀 더 재밌어 보입니다.

By best friend, I mean we occasionally grunt and stare awkwardly at each other.

 

[#7] 좀비들의 대사는 무서운(?) 느낌을 주기 위해 'a상처'체를 썼고 타이틀과 동일한 색깔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좀비들의 말은 느리면서도 문장구조를 제대로 이루지 않고 한두 단어로 되어 있어 짧은데요(중반 이후로는 길어지긴 합니다만), 말줄임표를 항상 붙임으로써 말이 느리고 생략되어 있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Hungry.

 

[#8] 그리지오 장군의 연설은 좀비와는 대조되는 파란색을 입히고 기울임을 적용해서 구분하였습니다. uncaring-unfeeling 처럼 대구를 맞추기 위해서 무신경-무감각으로 번역했습니다.

They are uncaring, unfeeling, incapable of remorse.

 

[#9] '감정을 나눈다'고 하면 두 사람의 의지에 따른 상호작용으로 생각이 되는데, 이 장면은 먹는 쪽의 일방적인 행위이므로 좀 안 맞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기억, 생각, 감정을 갖게 된다'고 번역해 놓은 자막을 다시 보니, 뇌를 먹음으로써 기존의 기억+생각+감정은 사라지고, 먹히는 쪽의 기억+생각+감정으로 대체된다는 뜻으로 읽힐 가능성도 있으므로 기존 자막이 나아보이기도 합니다.

But if I do, I get his memories,
his thoughts, his feelings.

 

[#10] 회상 씬은 보통 흐릿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영화는 회상(또는 뇌를 통해 습득한 기억) 씬이 오히려 더 색채도 다양하고 생생하기 때문에 희망적인 느낌을 주는 노란색을 사용해 봤습니다. 원 대사는 비행기가 지나며 구름이 생기는 걸 'Etch-A-Sketch'(좌우 레버를 돌려가며 그림을 그리는 장난감)에 비유했는데요, 우리말로 옮기는 건 쉽지 않네요^^;

https://en.wikipedia.org/wiki/File:Taj_Mahal_drawing_on_an_Etch-A-Sketch.jpg
My mom used to say that it looked like...
an 'Etch A Sketch' up there.

 

[#11] 좀비들이 어눌하게 끊어서 말하는 대사에 맞추기 위해서 자막도 가능하면 한 음절당 한두 글자씩으로 만들었습니다. 'Be dead'는 처음엔 '죽은‥척‥'으로 옮겼다가 '죽은 척'의 의미는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이므로 '따라‥해‥'로 바꿔봤는데 다음에 이어지는 동작과도 잘 어울려 보입니다. 다만 다음 대사는 '오버하지 말라'는 공식 자막이 더 재밌어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덜 좀비스럽네요^^;)

Be dead.
That's too m-much.

 

[#12] 마찬가지로 어눌한 느낌을 계속 살리기 위해 좀비의 대사는 문장 구조 대신 단어를 그대로 썼습니다.

Better...
s-sound.

 

[#13] 순수주의자의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아서 유행어(?)를 사용해 봤습니다.

Oh, you're a purist, huh?

 

[#14] 실제 대사의 길이에 맞춰서 자막도 짧게 끊어주는 게 더 감성적으로 느껴집니다. 

My boyfriend,
he died back there.
Will he come back?
As one of you?

 

[#15] '차라리 잘됐어'는 그래도 슬픔을 간직한 느낌, '그럼 다행이네'는 좀 더 쿨한 느낌입니다.

That's good, I guess.

 

[#16] 단어 위주로 말하는 좀비의 특성 상, 대사는 "Eat!"이지만 '먹어'보다는 '먹자'의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Living.
Eat!

 

[#17] 가독성을 위해 축약하다보면 오히려 의미의 직관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So much for dreaming.
You can't be whatever you want.

 

[#18] '굼뜨다', '퀭하다' 같은 고유어를 풍부하게 활용하는 게 재밌어 보입니다.

All I'll ever be is a slow, pale,
hunched-over, dead-eyed zombie.

 

[#19] 때로는 여러 문장을 하나로 합치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I should just be happy with what I had.
Things don't change. I need to accept that.

 

[#20] '어차피'라는 부사를 추가해 봤습니다.

I'm gonna forget about her,
just like I forgot about everything else.

 

[#21] 좀비와 사랑에 빠진 주인공에 대해 '안타까움 반 놀림 반'을 표현하기 위해 고민해 봤습니다.

Like, I wish the Internet was still working so I could just look up...
whatever it is that's wrong with you.

 

[#22] '혹시나-역시나' 구절을 사용해 봤습니다.

I have some makeup that I was saving for a special occasion...
that obviously isn't gonna happen.

 

[#23] 'R'이 하는 말이 일반 사람에게도 위화감 없이 통하는 순간부터 'R'의 대사는 좀비체가 아닌 인간체를 적용해 주었습니다.

How are you?

 

[#24] 쥴리가, R의 마음속(?)에 어떤 계기를 일으켰고(I triggered something in him) 그 변화가 다른 좀비들에게도 퍼지고 있다면서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그러자 그리지오 장군이, 본인에게도 어떤 계기가 일어난다면서 (it's triggered something in me) R을 쏘려고 합니다. 물론 분위기는 심각하지만 나름대로 위트있는 대사여서 느낌을 살리려고 해봤는데 썩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공식 자막 '못 들어주겠구나'는 무난하지만 역시 아쉬운 처리입니다.

I triggered something in him...
and that must have sparked something in all of them...
- No. / - Now it's triggered something in me.


주인공이 좀비라는 특성 상, 대사가 많지 않고 또 짧아서 금방 끝날 것으로 기대했는데요, 제 머리도 좀비처럼 느려졌나 봅니다‥ 지난 포스팅 이후로 3주나 지났네요; 오류 지적이나 의견 제안은 언제든지 환영하며, 이전에 작업하다 멈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빨리 마무리하고 다음 포스팅으로 올려보겠습니다.